풍수지리설에 얽힌 설화 레폿
[목차]
* 설화(說話)란
[분류]
[자료수집]
[의의]
풍수설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말기에 득세하여 조선 말기까지 크게 이해관계에서 작용하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쳐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도 조상의 무덤을 쓰기 위하여 갖가지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현지에 가서 풍수설화를 많이 채록할 수 있는 점에서 이 풍수설의 강인한 생명력을 알 수 있다.
1. 설화에서의 풍수개념
① 소재거리 ② 풍수의 능력, ③응험(應驗)과 효과 ④ 형성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소재의 규모에 따라서 우리나라 전체와 어느 도읍이나 마을, 산 사람의 집인 양택(陽宅), 그리고 죽은 사람편인 왕의 능묘, 국가유공자의 국립묘지, 개인의 묘지로 나눌 수 있다.
한반도를 토끼모양이라고 한 것은 일본인이 식민지정책으로 사용한 잘못이고 원래는 호랑이 모양이라 하였다. 그 증거로 경상북도 영일군의 구룡반도를 호미라 하고 여기 호미등에 일본이 1903년에 장기갑 등대를 세우자, 호랑이 꼬리에 불을 켜면 호랑이가 꼬리를 흔들어 등대가 넘어져서 부근이 불바다가 되고 우리나라가 고통에 빠진다고 주민이 한사코 반대하다가 급기야는 일본인 등대수 가족이 괴한의 손에 몰살당하는 일이 생겼다 한다.
왕릉을 잡은 풍수는 원칙적으로 죽이는 법이었으나 너무 잔인한 일이라 하여 `저 풍수 잡아라!` 고 소리만 치고 끝내는 일이 있었다. 고려를 나타내는 개성의 송악산신이나 근세 조선을 나타내는 삼각산신, 서울이 되려고 부지런히 달려오다가(또는 돌다가) 여자에게 들켜서 실패한 산이동 설화. 설울의 진산이 되려고 달려와서 보니 이어 다른 신이 먼저 자리잡고 실패하였다는 실패한 산설화 등은 모두 국가나 국도에 관한 풍수설화의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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